[하쿠카이]딸기 쇼트케이크와 너
* * *
하쿠바가 이상하다.
쿠로바는 기민하게 알아차렸다.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쿠바는 추리력이나 좋은 머리를 지닌 것에 비해 자신의 감정을 감추는 데에는 서툰 이였다. 그런 일에 능한 것은 하쿠바가 아니라 쿠로바, 그였다.
집에 불러놓고 같이 테이블에 앉아있으면서도 어쩐지 불안해보이는 얼굴하며, 아닌 척 가끔씩 그의 눈치를 살피는 것도-이미 알아차렸지만- 모두 한 가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하쿠바가 뭔가 숨기고 있어.
대체 뭘?
빅쥬얼을 훔치다가 일어난 사건에서 그가 하쿠바에게 고백 아닌 고백을 해버려선 사귀게 된 이후로 둘 사이에 비밀이랄 게 없었다. 물론 키드의 일을 탐정에게 고할 수는 없으니 암묵적인 양해 속에 진행하고 있기야 했지만. 무엇 때문에 저렇게 불안해하는 걸까.
쿠로바는 좀 더 고민해볼까, 하다가 그럴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난 탐정도 심리감정가도 아닌 그의 연인인데 그냥 물어보는 편이 더 낫겠지. 입에 넣었던 딸기 쇼트케이크를 꿀꺽 삼키곤 그에게 말을 걸었다.
“하쿠바,”
“헉,”
이름을 부르기가 무섭게 하쿠바가 벌떡 일어나 굳었다.
…아니 대체 왜 저래?
그리곤 다시 아닌 척 앉는 것도 어이가 없었다. 너 같으면 그 큰 키가 일어났다가 앉았는데 못본 척 할 수 있겠냐고요. 쿠로바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ㅇ, 왜?”
“너 왜 그래?”
“내가 뭘.”
“지금 네가 하는 꼴을 되돌아보고 생각한 뒤 말했으면 한다만.”
“난 지극히 이성적으로 말하고 있어.”
그렇게 말하는 네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는 건 내 착각이라 이거지. 쿠로바는 입을 삐죽였다.
“그래, 그런 걸로 치자.”
“그런 걸로 치는 게 아니라 그렇다니까.”
“알았어, 알았다고. 너는 안 먹냐?”
“난 아까 먹은 게 소화가 덜 됐나봐.”
한참 전에 약속도 해놨겠다, 사람 올 걸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먹었단 말이야? 쿠로바는 한층 더 빈정이 상해버렸다. 괜히 죄없는 케이크를 푹푹 찌르자 하쿠바가 제가 찔리는 것 마냥 움찔움찔 거렸다. 반을 뚝 갈라내자, 하쿠바가 눈을 휘둥그레 뜨곤 케이크가 담긴 접시를 휙 들어올렸다.
“진짜 왜 그러세요? 나 이제 슬슬 화나려 하거든?”
“아니, 아니, 이게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당장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나 간다.”
그렇게까지 말하면 평소의 하쿠바는 제가 잘못했다며 안절부절 못해선 쿠로바의 손을 조심스레 잡곤 했다. 그런데 이번은 아니었다. 한참 당황하더니 잠깐만 기다려달라며 되려 자리를 뜨는 게 아닌가. 쿠로바는 어이가 없어서 정말 돌아갈까 하는 마음이 잠시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오기도 생겼다. 뭔지 알아내기나 하고 가자. 그래서 하쿠바가 간 방향을 따라 발을 옮겼다.
이미 하쿠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도중에 어딘가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쿠로바는 천천히 걸으며 인기척을 찾았다. 그리 오래걸리지는 않았다. 우당탕탕, 하고 큰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주방 쪽이었다.
“뭐하… 는 거냐 정말.”
절로 그의 말꼬리가 흐려졌다. 본 광경이 너무 황당해서였다. 주방에서 하쿠바는 본디 한 판이었을 케이크 조각들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하쿠바와 빵칼, 그리고 난도질된 생크림 케이크 조각들이라니. 무슨 사건 현장도 아니고. 그제야 쿠로바의 존재를 알아차린 건지 돌아보는데, 그 얼굴이 정말 엉망이었다. 반쯤 얼이 나가선 눈동자도 초점이 나간 채 흔들리고, 내 잘난 하쿠바 얼굴 어디갔냐고. 쿠로바는 상황에 맞지 않게 푸핫,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거구만.
쿠로바는 하쿠바에게 다가가 칼을 쥔 손 위에 손을 얹어 칼을 자연스레 빼내었다. 하쿠바가 제정신이었다면 정말 키드다운 손놀림이라며 놀렸을 만큼 자연스러웠지. 그리 생각하며 쿠로바는 남아있는 케이크 조각들을 갈랐다. 예상이 크게 틀리지 않았는지, 덜컥하고 걸리는 것이 있었다. 쿠로바는 대충 칼로 케이크를 벌리곤 안쪽에 들은 것을 꺼내었다. 손가락 두 마디가 되지 않는 작은 상자였다.
쿠로바가 상자를 씻어내는 사이, 하쿠바는 조리대에 기대어 얼굴을 파묻었다. 깊은 속에서부터 나온 한숨소리가 들렸다.
“정말… 이러려던 건 아니었어.”
“그래, 그래. 케이크를 큰 걸 만들어온 쪽이 잘못한 거야.”
과했던 거지, 그렇지.
“게다가 제때 나오지 않아서 더 긴장해버려서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응, 응. 괜찮아, 괜찮아. 좀 기분 상하긴 했는데 금방 풀렸어.”
“이런 꼴도 보이고,”
“제법 귀여웠다고.”
“귀여울 리가 없는 걸 귀엽다고 하지 마.”
“푸하하학!”
결국 다시 쿠로바가 성대하게 웃음을 터트리자 하쿠바는 더욱 절망했다. 역시 웃겼던 거잖아. 그 사이 키득거리며 상자를 다 씻은 쿠로바가 다가와 곁에 섰다. 숨결이 귓가에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그가 입을 열었다.
“이거 나 혼자 열어?”
“마음대로 해.”
“정말?”
“그러라니까.”
“예쁘네, 이거.”
“그렇다고 진짜 여냐….”
하쿠바가 고개를 돌리자 싱글벙글 웃고 있는 쿠로바의 얼굴이 보였다. 눈이 마주쳤다.
“얼마나 기다리게 할 셈?”
하쿠바는 상자 안의 것을 꺼내어 쿠로바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작은 보석이 그의 손 위에서 반짝였다.
“예쁘긴 한데 작네, 보석.”
“크면 달빛에 비춰보기라도 하게?”
“너무하네. 그냥 늘 큰 걸 봐왔으니까 생각난 것 뿐이라고.”
“그래, 그런 걸로 치자.”
“아까 그 말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거지? 그런 거지?”
투덜거리면서도 쿠로바는 반지가 마음에 들었는지 만지작거렸다. 그야 하쿠바가 이것저것 주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이런 건 처음인걸. 그런 쿠로바의 손에 하쿠바가 뭔가를 더 쥐어주었다. 비슷한 디자인의, 보석만 다른 반지였다.
“끼워 줘.”
그의 말대로 끼워주면서도 쿠로바는 의아해했다.
“커플링이었어? 오늘 무슨 날이였나?”
사귄 일수를 따져도 별다른 날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 말에 하쿠바가 멈칫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야, 네 고백을 들은 기준이 아니라 내가 네게 사로잡혔던 날을 기준으로 한 거니까….”
이것도 좀 더 낭만적으로 말하고 싶었는데. 하쿠바가 한층 어두워진 얼굴로 말했다. 쿠로바는 다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아냐, 이것도 좋은데! 어디보자, 50일, 77일, 100일, 200일, 어디 즈음이려나-.”
쿠로바는 빠르게 머릿 속으로 셈했다. 빠르게 그와의 추억을 다시 떠올렸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너 설마.”
“말하지 마.”
“진짜냐.”
진심이냐. 하쿠바의 귀 끝이 붉게 달아오른 것을 본 쿠로바가 환히 웃었다. 진심이구나.
“최고의 선물이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