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쿠카이]하얀 비둘기 당신
[하쿠카이]하얀 비둘기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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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사건 의뢰로 키드의 예고장 현장에 제 시간에 가지 못했다. 이미 예고했던 시각을 17분이나 지났지만, 가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애초부터 없었기에 결국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으로 가는 길목에 나무가 무성한 거리를 지나고 있을 무렵이었다. 어느 순간 분 돌풍에 옷자락이 펄럭였다. 동시에 위쪽에서 단발마의 비명과 비슷한 것이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라는 생각에 이상함을 느낄 무렵, 머리 위로 하얀 그림자가 졌다. 그리고 잠깐이지만 기억이 끊겼다.
“죽다 살았네~.”
“으으….”
정신은 곧 돌아왔지만, 갑작스레 몸이 다섯 배로 불어난 것 마냥 몸이 무거웠다. 그리고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내 위에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다 큰 성인 남자가. 그는 이내 내 위에서 내려왔지만, 충돌로 인한 고통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하얀 그림자로 짐작할 수 있었듯이, 그였다.
“역시 당신인가요.”
괴도 키드.
“어라, 탐정 군이네.”
몸을 탁탁 털며 일어나는 모습은 흡사 새가 자기 깃을 고르는 것 같았다. 그의 입가에 씨익 입가에 미소가 맺힌다.
“날 찾으러 온 건가?”
“그랬습니다만…, 이렇게 깔리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네요.”
허리를 부여잡은 채로 말하자 그는 손을 내저으면서 과장되게 사과했다.
“아, 미안. 본의는 아니었어. 오늘은 비행할 생각도 아니었는데.”
“그랬겠죠. 오늘의 풍속은 11m/s. 이런 강한 북풍이 부는 밤에 비행하는 건 자살과도 같은 행위니까.”
“어라, 그 말 왠지 기분 나쁜 걸.”
“기분 나쁘라고 한 말입니다.”
“흐응, 그런가. 그래도 이번은 넘어가주지. 이건 내 실수니까.”
웬일로 비꼬지 않는 그였다. 그가 비뚤게 흘러내린 실크햇을 고쳐 쓰려는 순간, 그 챙 아래에서 하얀 비둘기 한 마리가 툭 떨어졌다. 엉겁결에 그걸 양손으로 받아든 키드는 어안이 벙벙해보였다.
“비둘기?”
“비둘기도 데리고 다녔습니까?”
“아니…, 일반적인 마술을 할 때라면 필요하긴 하겠지만 이런 곳에 데려올 리가 없잖아.”
하긴 아무리 훈련된 비둘기라도 범행 현장에 데리고 왔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아무래도 그가 떨어지는 도중 날아가던 비둘기가 봉변을 당했던 거겠지. 그는 찬찬히 비둘기를 살폈다. 아무리 도시의 비둘기라도 사람 손을 타지 않은 비둘기라 날아갈 법도 하건만 비둘기는 얌전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이 녀석, 날개깃이 다 망가져서 못 날게 됐어.”
“꼭 당신 같군요.”
“너 오늘따라 유달리 츳코미-어떤 일에 딴죽을 거는 것-가 매섭다?”
“누구라도 머리 위에서 키드가 떨어져 깔리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좋아할 녀석들도 많을 것 같은데.”
갸웃거리며 말한 그 말에는 부정할 수 없었다. 위에서 키드가 떨어졌다면 그를 잡으려드는 수많은 탐정들과 경찰들은 신나서 달려들었겠지. 물론 나도 그 중 하나이지만…, 어쩐지 맥이 빠져버려 잡을 생각도 들지 않는다.
“하아, 아무튼 다음부터는 이런 무모한 짓은 하지 마시길.”
방금은 정말, 당신과 나 모두 죽을 뻔 했으니까. 그 말에 그가 조금 멈칫하는 게 느껴졌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멀쩡하긴 해도, 사실 둘 다 크게 다칠 상황이었다. 그걸 그도 아는 건지 조용히 듣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완전히 박살난 행글라이더의 잔해를 회수했다.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진 하얀 망토는 그를 제법 애처로운 하얀 비둘기처럼 보이게 했다. 정리가 끝나자, 그는 비둘기를 품에 넣었다.
“비둘기는 왜…?”
“이대론 이 녀석 못 날게 될 테니까. 치료해서 보낼 거야.”
그 정도는 해줘야하지 않겠어? 그는 오히려 반문해왔다. 글쎄요, 그렇게 따진다면 그 아래 깔려서 다친 나는 어쩔 생각인가요? 나도 데려가 치료해서 보낼 겁니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인 것을 알기에 조용히 속으로 그것을 삼켰다. 애초에 그럴만한 사이도 아닌 것이다. 지나가다 재수 없이 치인 비둘기와 하늘에서 떨어진 도둑의 사이보다도 못한, 그런 사이.
“그렇군요. 가서 제대로 치료해 주시길.”
하고 싶은 말은 삼킨 채, 그렇게 말했다. 그는 퉁명스레 대꾸했다.
“말 안 해도 그럴 셈이야.”
먼 곳에서부터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그는 언제나처럼 사라질 것이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날개를 다쳐 날아가지 못한다는 것 정도일까. 그럼에도 그는 고고한 하얀 새 마냥 반듯하게 서선 우아하게 인사했다.
“자아, 그럼 쇼는 여기까지.”
연막탄이 터지고 그는 내 앞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아쉽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멀리서 경관들이 수색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느 순간 한쪽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꾸우우룩.
“비둘기?”
비둘기라는 말에 확신을 갖고 움직일 수 있었다. 저쪽이구나. 하지만 경관들은 비둘기로 인해 키드는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이내 조사를 끝내고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나 역시 더 이상 다른 곳에 갈 이유가 없었기에 경관들의 검문을 받은 뒤 그 자리에 머물렀다. 길 저편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편한 복장의 키드… 아니 쿠로바가 거기에 있었다.
“왜 키드를 놓아준 거야?”
라고 묻고 있지만, 아까의 비둘기는 여전히 품에 껴안은 채다. 흐트러진 머리칼이 밤바람을 타고 흔들렸다. 옷도, 머리카락도 아까와는 달리 어두운 색이기에 그는 밤 속에 잠겨들고 있었다. 하얗고 눈에 띠던 아까와는 다르지만, 너는 여전히 너였다.
“놓아준 게 아니라, 네가 도망친 거지.”
“난 키드가 아니다만. 그리고 너, 잡을 시도도 안 했잖아?”
키드가 아니라고 말하기가 무섭게 키드의 일을 말하는 그가 우스울 따름이었지만 지적하지는 않았다. 늘 그렇듯이, 그걸 지적하는 순간 그는 사라져버릴 테니까.
“그야 맥이 풀려서 그랬지. 그가 너무 어이없는 실수를 했거든.”
“뭐야!?”
“왜, 키드가 아닌 너는 별로 상관없을 텐데?”
“그, 그건 그렇지만.”
내가 그를 놓아줘서 그의 긴장이 조금 풀린 덕일까. 쿠로바의 가면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쿡쿡 웃고 있으니 비둘기가 장단을 맞춰주듯 울었다.
“아, 이 녀석 진짜 골 때리네. 널 치료해줄 건 나거든?”
“비둘기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넌 신경 끄쇼.”
이야기는 길지 않았다. 그는 곧 돌아가 봐야겠다며 몸을 돌렸다. 나는 그를 잡지 않았다. 대신 그의 등에다 대고 말했다.
“아까 그거에 대해 답하자면.”
“?”
“그냥 잡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야.”
“……? 무슨 뜻이야?”
“그런 게 있어. 넌 이해 못할.”
설령 이해할 수 있다하더라도 …하얀 비둘기인 당신을 잡아 내 품에 안고 싶다고.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헹, 싱겁긴.”
그는 그대로 길을 따라 걸어 사라졌다. 나는 그가 지나간 길에 남은 하얀 비둘기의 깃털을 하나 주웠다. 그리고는 그것을 품에 넣으며 그가 걸은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당신은 마술쇼에 나타나는 하얀 비둘기. 쇼와 함께 나타나면서도 언제라도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리곤 그 공연에서는 관객들 앞에 다시 나타나지 않겠지. 하지만 그 장막 뒤에서 다음 쇼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거라면.
한 번쯤은 내 앞에 다시 나타나주길. 오늘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