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아해.”
“역시 그렇습니…, 네?”
깊이 생각에 잠겨있는 그에게 기습적으로 고백해보았다. 사건에 대한 생각의 흐름과, 내 말에 대한 반응이 엇갈려 그는 한참을 멍하니 굳어있었다. 뭔데 귀엽냐. 겉으로는 평소와 같은 표정을 유지하면서도 속으로 웃었다.
“뭐라고요?”
“좋아한다고.”
“네?”
“몇 번을 말하게 하는 거야? 좋아한다고 했어.”
평소의 닦달하는 얼굴이나 날카로운 눈도 나쁘지 않지만, 맹한 것도 제법 괜찮은데. 그의 손과 발이 동시에 움직이는 것을 보곤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웃어보였다.
“뭘 그리 심각하게 반응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 잊은 거야?”
“날? 무슨 날이라도…. 아.”
교실 한 편에 걸린 달력을 돌아본 하쿠바는 그제야 이해한 눈치였다.
“만우절인데, 너무 당황해서 내가 다 놀랬다.”
“그렇습니까.”
그가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에 올려져있는 내 손을 내렸다. 그리곤 그대로 그 손을 끌어올려 손등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
뭘 가져다 대?
“갸아아아아앙악?!”
순간적으로 소름이 쫙 돋았다. 화들짝 몸을 내빼어 교실 저편까지 도망쳤다. 급우들은 쟤들 또 왜 저래, 하는 눈으로 보다가 신경을 껐다. 하쿠바가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더 이상 어디로 도망갈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사시나무 떨리듯 몸을 떨었다.
“뭘 그리 놀랍니까?”
“바, 바, 바, 방, 방금, 그, 그거!!!!”
“진정해요, 쿠로바.”
“지, 지, 진정하게 생겼어!?”
“그럼 조금 기다리죠, 뭐.”
하쿠바는 언제 당황했었냐는 듯이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이 녀석, 언제부터 이렇게 포커페이스에 능숙해졌지. 나는 쿵쿵거리는 심장을 가까스로 진정시키곤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래서, 뭘 기다린 거야?”
“대답이요.”
“대답?”
“저 역시 좋아한다고요.”
“바보냐. 내가 방금 만우절 거짓말을 쳤는데 그 말에 속을 리가.”
하쿠바, 남을 속이려거든 적어도 입술에 침이라도 바르고 하지 그래. 가볍게 타박했지만 하쿠바는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역시 농담처럼 들리려나요.”
“하하, 그럼 진심으로 한 고백이라고 할 셈이야?”
“글쎄요? 어느 쪽일까요.”
“어쩌라는 거야.”
혼란스럽다. 평소에 나는 포커페이스에 거짓말을 곧잘 하곤 했기에 진위여부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그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거기에 더하여 그에게 감정이 있는 나로서는 더더욱 객관성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는 순순히 나를 따라 교실 밖으로 나왔다. 나는 그를 끌고 화장실에 들어섰다. 쉬는 시간이었지만 화장실은 한적했다. 다들 거짓말을 하고 돌아다니느라 여념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
“네가 한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
“…쿠로바.”
“하지만 오늘은 만우절이니까, 거짓말이겠지.”
진심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가 건넨 고백은 거짓말이라 덮어 말했을지라도 진심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말할 수는 없기에 장난스럽게 웃어보였다.
“너 진짜처럼 잘하더라. 다음엔 나도 좀 더 분발해야겠어.”
“잠깐만요, 쿠로바.”
그가 고개를 숙여왔다. 키 차이가 크지 않기에 숨소리가 서로에게 들릴 정도로 가까워지고 나서야, 나는 이게 굉장히 부끄러운 자세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선을 내리깔았다.
“뭐하는 거야?”
“저기, 역시 이런 날 말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
“당신이 오해하게 두고 싶지는 않으니까 확실히 말하겠습니다.”
당신을 좋아해요. 아마도,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올려다 본 그의 눈은 그늘이 내려앉아 짙게 물들어있었다. 그의 말이 진심인 것처럼 느껴지도록. 그래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그렇다, 고 답해버릴 뻔했다.
“하…, 하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만우절 농담도 정도껏 해.”
“어떻게 해야 믿을 겁니까?”
“그만 하라니까.”
그가 내 뒷머리를 잡아왔다. 눈빛으로 알았다. 벗어날 수 없다. 눈과 눈이 맞닿는다. 코와 코가 맞닿았다. 뜨거운 입술도, 서로 맞닿았다. 도장을 찍듯, 입술을 명확히 남긴다. 숨결이 거칠다. 내 쪽도 마찬가지였다. 약한 입술의 피부가 따끔거렸다. 입술이 멀어진다. 코끝이 떨어진다. 하지만 눈은 여전히 맞닿은 채이다. 조심스레 물었다.
“…진짜야?”
“정말이래도요.”
진짜 같아. 다시금 생각해보니 하쿠바는 만우절이라 해서 거짓말을 할 녀석은 아니긴 했다. 사건 때문에 필연적으로 하게 되거나 하면 모를까. 그를 믿지 못한 건 내 쪽이 거짓말쟁이였기에 그 역시 그럴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그의 얼굴에 불안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헤에-.”
“무슨 생각을 하는 겁니까?”
“아니, 아무 것도.”
“그럼 이제 믿는 거죠? 진심이라는 거.”
“글쎄. 고작 입술 도장으로 어떻게 그런 걸 알아?”
“당신-!”
흥분해서 무어라 외치려는 그를 내 쪽으로 잡아당겼다. 그의 당황이 옷깃을, 손을 타고 내게까지 느껴졌다. 다시 앞에 놓인 입술에 촉, 하고 가볍게 키스했다.
“봐,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는 걸?”
“하하….”
싱글 웃어보이곤 그에게서 돌아섰다. 화장실을 빠져나오고 나서야 그를 돌아보았다. 그 자리에서 허탈하게 웃고만 있는 그에게 빙글 웃어 보이며 말했다.
“자, 날 좋아하신다고 하시는 하쿠바 군. 그 마음이 진짜라면 증명해주길 바라.”
“왜 그래야 합니까?”
“왜냐니? 마음이 와 닿는다면 사귀어줄 수도 있지 않겠어?”
“…당신은.”
정말 이길 수가 없군요. 그가 뒤따라 나오며 웃었다. 뭐, 쉽게 잡혀줄 수는 없지. 괴도 키드가 아닌 쿠로바 카이토로써도 말이야. 그러니 열심히 쫓아와보라고, 탐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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