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쿠카이]잔 안의 물

 

*

 

 

하나의 잔이 있다. 잔 안에는 반 정도의 물이 찰랑거리고 있다. 이 물은 과연 반밖에 남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반이나 남은 것일까.

 

“바보 아냐? 긍정적으로 보느냐, 부정적으로 보느냐 정도의 차이겠지.”

 

수첩에 쓴 글귀를 스윽 훔쳐본 쿠로바가 툭 하니 말했다. 그의 말이 옳았다. 잔 안의 물을 보는 것은 보는 사람의 눈. 어차피 잔에 들은 물은 누가 보아도 반 정도만 담겨있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반이나 남은 것이겠고, 부정적으로 본다면 반밖에 남지 않은 것이겠지.

 

“그런가요.”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굳이 이걸 여기에 쓴 이유가 있을 거 아냐.”

 

“글쎄요. 지금으로써는 반 밖에 남지 않았다, 일까.”

 

흐응, 그가 알 수 없는 호응을 해왔다. 원하던 답이 아닌 건지 미간은 조금 찌푸려진 채다.

 

“항상 제 잘난 맛에 사는 탐정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네.”

 

“그거 실례에요, 쿠로바.”


“맞아, 하쿠바 군은 잘난 맛에 사는 게 아니라 잘났다고.”

 

“아오코, 이상한 방향으로 맞장구치지 마라.”

 

두 사람이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눈에 익은 일상이었다. 한참을 주고받던 둘은 이내 큰 소리를 내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아까의 그 말 말이야.”

 

“?”

 

“신경 쓰지 마. 물 한 잔이 어떻게 보이든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아니면 뭔가 마음 쓰여서 그렇게 보일 때도 있는 거고. 그는 볼을 긁적이며 덧붙였다. 그리곤 자리로 돌아가 털썩 앉았다. 그가 던지고 간 말에 작은 잔의 물에 파문이 인다. 나는 조용히 두 손을 모아 얼굴을 감쌌다.

 

하나의 잔이 있다. 잔 안에는 반 정도의 물이 찰랑거리고 있다. 이 물은 과연 반밖에 남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반이나 남은 것일까. 사실 잔은 그저 반이 차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잔을 보는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조금은 부정적으로, 때론 미심쩍어하면서 보게 되고 마는 것이다. 지금의 나처럼.

 

그러니 네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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