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쿠카이]재회

 

*

 

 

“좋아해.”

 

“…….”

 

그는 태양을 등지고 선 채로 그렇게 말했다. 수업이 모두 끝나고 하교하는 시간이었기에, 햇빛은 길게 늘어져 그의 얼굴에 어스름이 맺혀있었다. 긴긴 하루 동안, 아니면 어쩌면 더 긴 시간 동안 그는 이 말에 대해 고민했겠지.

 

그리고 그건 나도 그러했다.

 

그가 고백을 고민하고 있던 것처럼 나 역시 그의 고백에 대한 답을 생각했다. 어찌 그가 고백할 것을 알아차렸느냐고 묻는다면 항상 견원지간 마냥 싸워온 그가 어느 순간 온순해질 무렵부터 알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수업 도중에 시선이 느껴졌을 때 확인해보니 그가 서둘러 밖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어서일까. 아픈 눈을 하고 쳐다봤기에, 입술을 씹어가며 참아가는 모습을 보았기에, 이도 저도 아니라면.

 

키드인 나를 잡았음에도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다시 놓아줘버렸을 때 확실히 알아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먼저 알았기에, 준비할 수 있었기에. 흔들리지 않았다.

 

“미안.”

 

그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나보다. 방향을 잃은 간절함이 담겨 있던 눈동자는 그가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사라져있었다. 내게 간결히 인사했고, 언제나처럼 딱딱한 걸음걸이로 계단을 내려갔다.

 

거절 이후의 상황은 더 간단했다. 그는 곧잘 그래왔던 것처럼 사건의뢰를 받아 영국으로 떠나갔다. 그리고는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 몇 달간은 학교에서도 말이 많았지만, 그가 영국으로 전학 갔음을 알리는 담임선생님의 말씀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그의 이야기를 거의 듣지 못했다.

 

누구도 내가 그에게 고백 받았다는 사실을 모르지만, 혹여 알게 된다면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때 거절했던 거냐고.

 

간단했다.

 

나도 그를 신경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니 키드는 위험한 이들에게 쫓기는 신세이고 얽히면 다칠 것이 뻔했다. 키드인 나를 명확하게 알고 있는 하쿠바라면 더더욱. 그리고 내가 그를 받아주었다 해도, 어떤 순간이 온다면 그를 포기하고서라도 내 일을 하고자 할 것을 안다. 그러면 분명 상처 받을 테지.

 

그렇게 그를 보내고 나서 더 키드 일에 집중했다. 뭘 해도 다른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기에 그나마 중요한 곳에 힘을 쏟은 거다. 언젠가 그가 돌아오게 된다면 한 번쯤은 쫓으러 오지 않을까, 그런 약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고, 나도 어느 순간 더 이상 그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래야만 내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

 

 

“으음, 역시 영국에는 인물이 없구만.”

 

키드의 일을 한지도 벌써 3년 째. 일본에 들어오는 빅쥬얼은 씨가 말랐다. 지로키치 씨가 고군분투하여 어쩌다 한 번 들어오는 수준이니 말 다했지. 그러다 보니 해외도 몇 번 오가게 되었고 이번은 영국에 와서 예고장을 보냈다.

 

연막탄이 터진 전시장에서 경찰들은 이리저리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보석은 사라졌고, 키드의 모습은 보이지 않으니 당연한 거지만 어설프기 짝이 없다. 하기야 일본에서도 아직까지 별달리 나아진 바가 없었다. 간간히 나타나 생명을 위협하곤 하는 명탐정을 제외하고는. 어이어이, 환기구 한 번 확인 안 하고 어딜 가는 거야. 보석도 진짜 사라진 건지 확인해봐야지! 아무리 훔치는 입장이라도 이쯤 되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보석이 사라졌다 판단한 경찰들이 빠져나간 전시장에 슬쩍 뛰어내렸다. 하얀 망토가 빠져나가지 못한 연기 위에 고요히 내려앉았다. 어렵지 않게 보안장치를 해제하고 보석을 손에 넣었다. 곧장 창가에 가 판도라 여부를 확인했다.

 

“역시 꽝이네.”

 

에휴. 한숨을 내쉬며 품에서 미리 써온 카드를 꺼내어 다시 보석과 함께 넣었다. 덮개를 덮고 돌아섰다.

 

“여기까지 보석을 훔치러 온 겁니까?”

 

“!!”

 

하쿠바 사구루. 네가 왜 여기에. 믿을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키드를 쫓으러 온 일이 없는 그였다. 그런데 왜 지금, 너를 거의 지웠다고 생각한 이때 내 앞에 나타나는 걸까. 이전보다 낯빛이 어두워진 그는 메마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랜만이군요.”

 

이전의 이성의 껍질을 뒤집어쓴 채 열정을 다하던 탐정 소년은 이제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은 듯 했다. 차분하고, 감정이 배제된 것 마냥 냉한 눈빛의 청년. 그런 모습이 어쩐지 시리도록 와 닿는 건 무엇 때문일까.

 

“보석이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라도 갑니다. 괴도 키드이니까.”

 

“그래요, 이전의 키드는 그랬었지만 당신은 아니었지.”

 

이전의 키드. 그의 말을 나는 어렵지 않게 이해했다. 그는 내 아버지와 나를 구분해낸 것이다.

 

“그래서 난 당신이 여기에 온 게 어떤 의미라도 있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예고장을 경찰에게 건네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당신은 결코 모르겠지요. 그야 당연히 모른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아직까지 그 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얽매여있다는 사실. 그는 말을 이었다.

 

“그때의 난 몰랐지만 이제는 압니다. 당신이 어떤 위험에 처해있고, 어떤 이유로 범행을 저지르는지.”

 

“휘유.”

 

정말로? 계속 활동해왔지만 아직까지 그 동기까지 알아챈 이가 없었는데. 하기야 그는 이미 3년 전 그때 내 정체를 알고 있었으니 거기서부터 시작했으리라.

 

“그래서?”

 

“나는-.”

 

당신이 더 이상 혼자 힘들어하는 걸 볼 수 없어요. 그러니까. 더 이상 도망치지 말고 내게 맡겨요. 그걸 위해 여기까지 왔으니까.

 

우습게도, 그 말뜻을 대번에 이해했다. ‘여기’라는 건 단순히 이 자리에 왔다는 게 아니라.

 

여태까지 해온 일들 모두를 뜻하는 거다. 일본을 떠나고, 나를 찾아오지 않았던 그 시간동안 해왔던 일들. 나는 그를 잊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왔는데, 그는 반대란다. 이 전혀 다른 앞뒤가 맞닿은 뫼비우스의 띠 위에서 우린 무얼 하고 있는 걸까.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그를 향해 물었다.

 

“무슨 생각이지?”

 

탐정 군…, 아니 이제 탐정님인가. 내 말에 하쿠바는 실소했다.

 

“생각 같은 논리적인 판단이 아닙니다.”

 

감정이 앞서고, 그 뒤를 이성이 정리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렇게 말하는 그는 꽤 지쳐보였다.

 

“그러니, 당신도 더 이상 도망가지 말아요. 난 아직도 당신에게 진심이니까. 이제는 피하지 말고 답해주면 좋겠어.”

 

“나는.”

 

나는, 나는.

 

더 이상 무언가를 생각하기 힘들었다. 사고의 흐름은 고장 난 오르골처럼 같은 부분을 반복했다. 멀찍이 서있던 그가 성큼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와락 안았다.

 

“울지 말아요.”

 

“안 울어.”

 

“거짓말.”

 

“정말이야. 눈물 같은 거, 안 흐른다고.”

 

“그건 맞아요. 당신 포커페이스는 정말 예나 지금이나 끔찍할 정도로 단단한 걸. 그래도 이제는 그 밑의 얼굴을 압니다. 그러니… 3년 전의 나처럼 그렇게 쉽게 포기하진 않아요.”


이 재수 없는 탐정은 여전히 끈질기다. 그럼에도 이 팔을 뿌리칠 수 없다. 그건 아무래도.

 

“하지 마.”

 

“네?”

 

“포기하지 말라고.”


나도 네가 떠나간 3년 간 너를 온전히 지우지 못했으니까, 네가 포기하지 못하게 한다 해도 그리 불공평한 거래는 아닐 것이다.

 

 

*

 

 

썰상태

하쿠바가 카이토에게 고백. 카이토는 자기가 쫓기는 신세인 걸 절실히 알고있고 하쿠바를 상처입히고 싶지 않은 것 등이 복합적으로 반영되어 거절. 하쿠바는 거절당한 후 언제나처럼 영국으로 떠나갔고, 더이상돌아오지않음. 카이토는 허전함을 느끼지만 자신에게 그게 더 우선이 아니라고, 부러 키드일에 더 노력함.

 

그러다 둘은 성인이 됨. 하쿠바는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탐정이 되었고, 카이토는 더 이상 일본 내에서는 훔칠 보석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판단, 해외를 돌아다니기 시작. 그러다 영국에 보석을 훔치러감. 그리고 언제나처럼 수월하게 훔치고 확인하고 도망가려는데.

 

하쿠바랑 딱 마주침. 예전보다 메마른 선이 안쓰럽게 느껴짐.

 

"여기까지 보석을 훔치러 온 겁니까?"

 

열정적인 모습을 곧잘 보이던 이전과 달리 더 차분하고 감정이 배제된 것처럼 고요함. 카이토는 괴도 키드는 원래 전세계의 보석을훔쳤다함.

 

"그래요, 이전의 키드는 그랬겠지만 당신은 아니었지. 그래서 난 당신이 여기에 온 게 어떤 의미라도 있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예고장을 경찰에게 건네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당신은 결코 모르겠지요.

 

그야 당연히 모른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아직까지 그 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얽매여있다는 것은.

 

"그때의 난 몰랐지만 이제는 압니다. 당신이 어떤 위험에 처해있고, 어떤 이유로 범행을 저지르는지."

 

"휘유."

 

진짜야, 그거? 본국에서 계속 활동해왔지만 아직까지 알아챈 이가 없었는데. 하기야 그는 이미 그때 카이토의 정체를 알고 있었으니 거기서부터 시작했으리라.

 

"그래서?"

 

"나는-."

 

당신이 더 이상 혼자 힘들어하는 걸 볼 수 없어요. 그러니까. 더 이상 도망치지 말고 내게 맡겨요. 그걸 위해 여기까지 왔으니까. 그 말 뜻을 대번에 이해했다. '여기'라는 건 단순히 이 자리에 왔다는 게 아니라.

 

여태까지 해온 일들 모두를 뜻하는 거다.

 

"무슨 생각이지?"

 

탐정 군…, 아니 이제 탐정님인가.

 

"생각 같은 이성적인 판단이 아닙니다."

 

감정이 앞서고, 그 뒤를 이성이 정리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렇게 말하는 그는 꽤 지쳐보였다.

 

"그러니, 도망가지 말아요."

 

난 아직도 당신에게 진심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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